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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8 12:59

그림의 떡이었던 식민지 조선의 골드러시

  • 더나은 3일 전 2026.06.08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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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식민지 조선의 황금광 시대

문학작품은 때로 시대상이나 공간을 기록한다. 1930년대 서울의 풍경을 엿보고 싶다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권한다. 이 소설은 소설가 구보가 노트를 들고 하루동안 경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관찰한 도시와 풍속을 오롯이 담고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박태원이 1934년8월1일부터 9월19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30회 연재한 중편소설이다. 신문 연재소설이다보니 삽화가 있는데 삽화를 그린 이는 하융이라고 돼 있다. 하융이 누굴까. 소설가 이상이다. 박태원과 이상은 막역한 친구였고, 구인회 멤버였다.

경향신문 자료

구보는 박태원의 호다. 그러니까 소설 속 주인공 구보는 사실상 박태원 본인이다. 구보는 도쿄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지금은 뚜렷한 직장없이 소설로 푼돈을 벌고 있는 26세의 청년. 이날도 구보는 점심께 느즈막이 일어나 집을 나선다. 천변길을 따라 광교로 걷다가 종로네거리로 갔다가 전차선로를 건너 조선인 자본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상회 안으로 들어간다. 상회를 나와 전차를 탄다.

1932년 종로2가에 세워진 화신백화점

전차는 훈련원을 지나 약초정을 지난다. 약초정은 지금의 을지로 3가와 중구 저동 부근이라고 한다. 조선은행앞에서 내린 구보는 장곡천정, 즉 소공동으로 향한다. 다방에 들러 가배를 마시고 담배를 피며 잠시 쉰 구보는 부청, 즉 서울시청쪽으로 걷는다.

고현학으로 들여다본 1930년대 식민지 경성

구보는 이 여정에서 행복해보이는 젊은부부, 예전에 선을 보았던 여성, 과거 자신이 알아보지 못했던 한 남자를 만나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구보는 특별한 사건없이 그저 거리를 걸으면서 마주치는 풍경들, 사람들을 보며 머릿 속에 떠오르는데로 파편화된 상념과 기억, 감상을 기록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소설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라 ‘발단-전개-위기-절절-결말’로 스토리를 형성한다. 하지만 <구보씨의 일일>은 특별한 사건이 없다. 생각의 흐름을 좇아 내면적 심리변화, 파편화된 현실에 집중하는데 이는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한국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이유다 .

조선은행 1910년. 경향신문 자료사진

구보는 걷다가 창작을 위해 서소문정 방면으로 답사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든다. 그러다 곧 “‘모데로노로지오’를 게을리 하기 오래다”라고 자책한다. 모데로노로지오란 모더놀로지(modernolgy) 즉 고현학을 말한다. 고현학(考現學)이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현재를 고찰하는 학문’이다. 땅속에 묻힌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을 통해 옛날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는 ‘고고학(Archaeology)’처럼 거리의 옷차림, 건물, 가방안 소지품, 지하철 안의 풍경 등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유행, 풍속, 사람들의 일상과 행동 양식, 문화현상을 분석한다.

이 시대의 무직자는 금광 브로커다

뙤약볕을 이고 걷던 구보는 경성역 대합실로 들어가는 데, 개찰구 앞에서 낡은 파나마 모자에 모시 두루마기 노랑구두를 신은 두명의 사내를 만난다. 구보는 한눈에 이들이 무직자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면서 대합실 안팎을 둘러보는데, 이곳저곳에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구보는 말한다. “이 시대의 무직자들은 거의다 금광 브로커가 틀림없다”고.

경성역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30년대 조선에는 골드러시가 있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무수한 광무소가 산재해 있고, 출원 등록된 광구는 조선 전땅의 칠할이었다고 당시의 시대상을 기록한다. 또 인지대는 백원, 열람비는 오원, 수수료는 십원, 지도대는 십팔전이었다며 광산개발 허가 비용도 언급한다. 구보는 말한다. “지금은 시시각각 사람들이 졸부가 되고, 또 몰락해간 황금광시대”라고. 그리고 이런 사람들 무리에는 평론과 시인 같은 문인들도 끼어있었다고 증언한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초판본(1938·문장사)[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연합뉴스

1930년대 조선에는 어떻게 일확천금을 꿈꿀 수 있는 골드러시가 생겨났을까? 여기에는 식민지를 수탈하려는 일제의 산금(産金)정책이 있었다. 1930년 대공황으로 국제금융질서가 무너지면서 금본위제를 지탱하는 금의 가치가 폭등했다. 여기에 1931년 만주사변으로 전쟁자금이 필요했던 일제는 조선에서 금 생산을 독려하는 산금정책을 강력하게 폈다. 시설 자금을 보조해주거나 금 채굴 절차를 간소화해주면서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금광 사업에 뛰어들도록 했다.

앞서 조선광업령에 따라 땅주인이 누구든 상관없이 땅 아래에 있는 광물은 조선총독부의 소유가 됐다. 조선총독부는 광산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광업권을 내줬다. 채굴할 수 있는 권리인 광업권은 전매가 가능해 그 자체로도 큰 돈이 오갔다. 대공황으로 농촌사회가 붕괴되고 도시에서도 많은 공장이 무너지자 지식인, 농민, 노동자 할 것 없이 모두가 금광을 찾아 산으로 들로 뛰어들었다. 경교장을 지은 최창학, 조선일보를 인수한 방응모, 화신상회를 인수했던 박흥식이 광산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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